주일설교
by 방송실
202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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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 오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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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 25장 1-13절)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래쇼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1세기의 문맹은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잊고, 다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미래를 살아가는 핵심 능력이 ‘빠른 변화에 대비하는 준비성’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래는 단순히 기다리는 사람에게 열리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다시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열리는 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 처녀 비유에서도 이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신랑이 더디 온 것이 아니라,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이 늦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대림절은 주님의 오심이 지연된 것으로 보이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준비해야 할 시간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기간입니다. 1. 모두가 (준비)되지는 못했습니다. (3-4절) 열 처녀는 모두 등불을 들고 같은 자리에서 신랑을 기다렸지만, 실제로 준비된 사람은 절반뿐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모두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나, 내면의 준비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불뿐 아니라 기름까지 준비했지만, 미련한 처녀들은 등불만 가지고 있었기에 결정적 순간에 빛을 밝힐 수 없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해서 모두 준비된 것은 아닙니다. 대림절은 “모두가 기다렸지만 모두가 준비된 것은 아니다”라는 말씀 앞에서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2. 기름은 신앙의 (지속성)을 의미합니다. (8절) 기름은 믿음을 끝까지 지키게 하는 영적 지속성을 상징합니다. 열 처녀 모두 졸며 잠든 것은 인간적 연약함을 보여주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기름의 유무에서 갈렸습니다. 준비된 사람에게는 어두운 밤에도 믿음의 불이 꺼지지 않았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위기의 순간에 등불이 꺼져갔습니다. 말씀(큐티)과 기도, 성령님과의 동행, 사랑의 실천과 순종의 기름을 평소에 채운 사람만이 마지막 결정적 순간에 신앙의 빛을 지킬 수 있습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믿음은 ‘그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기름을 채우는 데서 시작됩니다. 3. 준비 없는 자에게 (미래)의 문은 닫힙니다. (10-11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 문은 닫힌지라”라는 말씀은 신랑이 늦은 것이 아니라,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이 늦은 것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신랑되신 예수님을 영접할 기회는 항상 열려 있지만, 때로는 되돌릴 수 없는 순간에 닫히기도 합니다. 미련한 자들은 뒤늦게 문을 두드리며 “주여, 주여, 우리를 위하여 열어 주소서!”라고 외쳤지만, 그들의 요청은 이미 늦었습니다. 이처럼 대림절은 닫힌 문 앞에서 울지 않도록 지금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초대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기름을 채우고, 주님을 맞이할 믿음의 준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나눔 및 적용 1. 이번 대림절을 지나며, 나는 ‘기다리는 사람’인가, ‘준비하며 기다리는 사람’인가? 2.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위해 이번 주에 반드시 회복하거나 실천할 ‘믿음의 기름 한 가지’를 정한다면 무엇인가? (말씀·기도·사랑 실천·순종 등)
by 방송실
202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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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로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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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로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의 인생 (계 21:1-4) 세례는 하나님 나라의 미래가 한 사람의 현재 속으로 들어오는 영적 사건입니다. 계시록 21장이 보여주는 새 하늘과 새 땅은 마지막 날의 그림이면서, 세례를 통해 이미 시작되는 은혜의 실재입니다. 세례는 과거를 끊고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며, 미래의 위로를 오늘의 삶에 인침으로 새기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1. 세례는 옛 (질서)가 무너지고 새 (질서)가 시작되는 사건입니다 (1절) 본문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다”고 선포합니다. 이것은 죄와 혼돈, 두려움과 죽음의 옛 질서가 끝나고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가 시작됨을 보여줍니다. 세례는 이 선언이 한 사람의 삶 속에 적용되는 순간입니다. 세례는 옛사람의 질서가 무너지고 인생의 주인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바뀌는 영적 전환입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살아나는 새 창조의 자리이며,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내 삶에 뿌리내리기 시작하는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은 세례받는 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과거는 끝났다. 이제 내가 너의 인생을 새롭게 한다.” 2. 세례는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로 들어가는 순간입니다 (3절)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리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세례는 하나님이 멀리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한복판에 임재하시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던 장막이 세례를 통해 세례받는 자 안에 성령님이 임재하십니다. 또한 세례는 개인적 신앙을 넘어 하나님 나라 공동체로의 입성입니다. 한 사람이 세례를 받을 때, 그는 교회라는 성전의 한 지체로 붙여지고 공동체는 그 생명을 통해 더 풍성해집니다. 세례는 더 이상 성도가 혼자가 아닌 공동체적 영성을 지닌 존재로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3. 세례는 미래의 위로가 현재의 삶에 미리 당겨지는 (보증)입니다 (4절)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을 것이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는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삶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이는 완전하게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위로입니다. 이처럼 세례는 이 미래의 약속을 현재의 삶 속에 보증으로 새기는 자리입니다. 세례를 받은 이후에도 우리 삶에서 여전히 눈물과 아픔을 경험하지만, 그 고통이 인생의 끝이 아님을 선언받습니다. 따라서, 세례받은 자는 미래의 위로와 소망을 소유한 사람이 되어 오늘의 삶을 새 시각과 새 힘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나눔 및 적용 1.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가져오신 “새 질서”는 무엇이라고 느끼나요? 지금도 여전히 붙잡고 있는 ‘옛 질서’(두려움, 죄책감, 자기중심성 등)가 있다면 무엇인지 함께 나누어 보세요. 2. 현재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세례의 약속을 붙들며 새 힘을 얻고 있는 영역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by 방송실
202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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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가 사라지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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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가 사라지지 않기 위하여 (신 8:1-10) 추수감사절은 단순히 한 해 동안 받은 복을 세어보는 절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감사를 “상황”이나 “결과”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기억, 믿음과 연결된 신앙의 핵심 가치로 보여줍니다. 특별히 신명기 8장은 광야라는 가장 감사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감사를 잃지 않는 신앙”이 무엇인지 가르치신 장면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 풍성해질 때 오히려 감사가 사라질 수 있기에 하나님은 광야에서부터 감사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감사가 흐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영적 원리가 필요합니다. 바로 첫사랑, 환경을 넘어서는 감사, 감사로 열리는 풍성함입니다. 1. 첫(사랑)을 놓치지 않으면 시험을 이기고 감사가 나옵니다 (영적 권태기 금물) 신명기 8장 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시며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셨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험의 목적은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광야는 힘든 자리였지만, 하나님은 아버지가 아들을 징계하듯(5절) 그들을 사랑으로 양육하셨고, 그 관계 속에서 감사가 다시 흐르게 하셨습니다. 감사는 환경에서 나오는 감정이 아니라 관계에서 나오는 열매입니다. 하나님과 처음 가졌던 마음, 첫사랑을 지킬 때 시험 속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감사가 흘러나옵니다. 첫사랑이 살아 있으면 시험을 이기고, 시험을 이기면 감사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2. 믿음의 눈이 열리면 감사하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광야 감사/영적 원망 금물)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주리고 낮아지는 광야 환경을 지나며 외적으로는 감사할 조건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척박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 먹이셨고, 옷이 해어지지 않도록 지키셨으며, 발이 부르트지 않게 보호하셨습니다(3-4절). 이처럼 환경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하는 눈이 바로 믿음의 눈입니다. 믿음의 눈이 열리면 보이는 현실이 달라지고,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광야는 고난의 장소가 아니라 믿음을 배우고 감사를 훈련하는 자리가 됩니다. 3. 감사하면 아름다운 땅에 살게 되며 삶이 (풍족)해집니다 (영적 풍요의 삶) 하나님은 결국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시냇물과 샘이 흐르고, 곡식과 열매와 기름과 꿀이 풍성한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 살게 될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7-8절). 그 땅은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먹고 배부른 복을 주시는 곳이었습니다(9-10절). 하나님이 풍요를 주신 목적은 배부른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잊지 않고 찬송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처럼 감사는 풍요를 경험하게 하고 더 큰 은혜로 나아가게 하는 영적 열쇠가 됩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부족함 없는 삶의 길을 열어주실 줄을 믿습니다. 나눔 및 적용 1. 올 한 해 동안 내 삶의 광야와 풍요의 순간들을 돌아볼 때, 나는 어떤 자리에서 감사가 흐르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했는지 함께 나눠봅시다. 2. 이번 주 나는 ‘첫사랑을 회복하고, 환경을 넘어 감사하며, 풍요 속에서 하나님을 잊지 않는 삶’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감사의 한 가지 실천을 하겠습니까?
by 방송실
202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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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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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딤후 1:9-12)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십니까? 우리는 모두 자기 자리에서 각기 다른 일을 감당합니다. 어떤 사람은 회사를 다니고, 어떤 이는 가정을 돌보고, 학생들은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합니다. 독일어로 “베루프(beruf)”란 단어는 직업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원래 “부르심(calling, 소명)”이라는 뜻에서 나왔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특정한 자리로 부르셨다는 의미가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왜 부르셨는가?” 오늘 말씀은 그 답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의 (전달자)로 부르셨습니다. (9–10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그저 죄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구원은 곧 사명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을 전달하는 사람, 즉 생명의 소식을 전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은 우리의 능력이나 자격, 배경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과 은혜에 근거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을 통하여 하나님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부활의 소망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감당하는 작은 전도, 작은 섬김도 모두 영원으로 이어지는 복음의 통로가 됩니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이 보내신 자리에서 생명과 소망을 전하는 전달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2. 하나님은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를 세우셨습니다. (11절) 사역자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일꾼입니다. 선포자는 복음을 외치고, 사도는 교회를 세우며, 교사는 말씀으로 다음세대를 양육합니다. 역할은 다르지만 목적은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복음이 이 땅에 전파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사명은 바울 한 사람, 목회자 한 사람에게만 맡겨진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의 일꾼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신 목적이 있습니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복음의 바통을 들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3. 하나님은 사역자들을 (혼자) 일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12절) 사명에는 언제나 고난이 따릅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오해를 받기도 하고, 손해를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멀리서 지켜보시는 분이 아니라, 함께 하시며 동행하시는 분입니다. (막16:20) 우리가 복음을 위해 헌신할 때, 하나님은 우리 곁에서 힘을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시며, 모든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붙잡을 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이 확신이 우리로 하여금 끝까지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하게 만듭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리에서, 특히 가정과 다음세대를 세우는 교사로서 복음의 전달자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2.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by 방송실
202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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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부터 배척받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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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부터 배척받을 때 (막 6:1-6) 예수님은 사역이 왕성하게 일어나던 시기에 고향 나사렛을 찾으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누구보다 먼저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배척했습니다. 배척은 예수님께서 사명을 따라 걸어가실 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신앙을 지키고 진리 위에 서고자 할 때,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거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배척받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익숙함)이 은혜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2-3절)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과 놀라운 능력을 보면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저 사람은 우리가 아는 목수 아닌가? 마리아의 아들 아닌가?” 하며 예수님을 과거의 기준에 가두었기 때문입니다. 익숙함은 영적 감각을 둔하게 만들고 은혜를 놓치게 합니다. 우리가 예배, 말씀, 교회, 성도들을 익숙하게 대하는 순간 기대와 설렘이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은혜도 보지 못합니다. 익숙함은 배척의 시작이며, 은혜를 가리는 영적 장막이 될 수 있습니다. 2. (배척)은 사명을 따라가는 자의 길입니다 (4절)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경험은 예수님께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 배척받는 것은 진리를 따르는 자, 사명을 붙잡는 자가 걸어가는 필연적 과정입니다. 오늘 성도도 신앙을 지키려 할 때, 오히려 가족, 친구, 직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 오해받고 비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에 우리가 서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인정이 더 중요합니다. 배척은 사명의 끝이 아니라 사명의 확인입니다. 3.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5-6절) 성경은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라고 기록합니다. 능력이 없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역사를 막은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배척하고, 진리를 거부해도,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배척받을 때 포기하거나 닫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믿음으로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믿음이 배척을 은혜의 통로로 바꿉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신앙생활 속에서 무엇을 익숙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그 익숙함 때문에 놓치고 있는 은혜는 무엇인지 함께 나누어봅시다. 2. 최근에 신앙 때문에 불편함, 오해, 외로움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나누고, 그 상황 속에서 믿음으로 서기 위해 어떤 결단이 필요할지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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