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칼럼
2026년 5월 QT칼럼 <모든 이들에게 성경이 읽혀지도록>
2026-04-30 09:48:52
교역자실
조회수 3
<모든 이들에게 성경이 읽혀지도록>
조선 왕조 제 4대 왕인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을 보면 아래와 같은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이를 가엾게 여겨 새 글자를 만든다.”
이는 세종대왕의 깊은 애민(愛民) 사상을 보여줍니다. 백성을 향한 그의 마음은 사람을 향한 진심 어린 긍휼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글을 알지 못해 자신의 뜻을 펼 수 없는 백성들을 위해 새로운 문자를 만든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사용하는 ‘한글’의 시작입니다.
이처럼 문자는 기록 수단을 넘어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세상에 드러내는 통로가 됩니다. 그러나 이 문자가 일부 계층만의 것이 될 때, 진리는 소수에게만 머물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는 역사 속에서도 반복되어 왔습니다.
중세 시대의 유럽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내용을 직접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5세기 중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자 인쇄술을 발전시키면서 책은 더 이상 소수만이 소유하는 필사본이 아니라 빠르게 복제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사람들이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더 이상 성직자만의 성경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특정 계층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신앙적 확신에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결국 인쇄술의 발전과 성경 번역은 함께 맞물려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사람들의 언어로 사람들의 손에 닿게 되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읽지 못하던 글이 읽히게 되고 접근할 수 없던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성경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성경에 나오는 익숙하지 않은 표현들은 말씀을 가까이하는 데 많은 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 시대의 교회와 신앙 공동체는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경을 함께 읽고, 설명하고, 삶의 언어로 풀어내는 작은 노력들이 모일 때, 말씀은 다시금 우리의 일상 속으로 살아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 느헤미야 8장 8절 -
|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
| 13 | 2026년 5월 QT칼럼 <모든 이들에게 성경이 읽혀지도록> | 교역자실 | 2026-04-30 | 3 |
| 12 | 2026년 4월 QT칼럼 <우리는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 교역자실 | 2026-04-01 | 50 |
| 11 | 2026년 3월 QT칼럼 <말씀 속에 피어나는 봄> | 교역자실 | 2026-03-01 | 72 |
| 10 | 2026년 2월 QT칼럼 <말씀의 온기에 닿은 만큼 녹습니다> | 교역자실 | 2026-01-27 | 121 |
| 9 | 2026년 1월 QT칼럼 <영적 이니셜 ‘J’> | 교역자실 | 2026-01-09 | 124 |
| 8 | 2025년 12월 QT칼럼 <바이블 힙, 내게 주신 말씀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시간> | 교역자실 | 2026-01-09 | 119 |
| 7 | 2025년 11월 QT칼럼 <나만의 Faithbook을 기록하십시오> | 교역자실 | 2026-01-09 | 125 |
| 6 | 2025년 10월 QT칼럼 <믿음의 패션> | 교역자실 | 2026-01-09 | 124 |
| 5 | 2025년 9월 QT칼럼 <라이프 리셋(Life Reset) - 복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삶> | 교역자실 | 2026-01-09 | 119 |
| 4 | 2025년 8월 QT칼럼 <미인영혼> | 교역자실 | 2026-01-09 | 124 |
| 3 | 2025년 7월 QT칼럼 <말씀으로 충전하는 삶> | 교역자실 | 2026-01-09 | 120 |
| 2 | 2025년 6월 QT칼럼 <영광의 극장 속에서 말씀을 묵상합시다.> | 교역자실 | 2026-01-09 | 125 |
| 1 | 2025년 5월 QT칼럼 <어울림> | 교역자실 | 2026-01-09 | 115 |
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