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by 방송실
202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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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서 오열하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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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서 오열하는 인생 (요한복음 20장 24-29절) 오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너무 슬프고 힘들어서 오열(嗚咽)하는 것과 진리를 깨달아 기뻐서 감사해서 오열(悟悅)하는 것이지요. 우리 인생에는 이 두 가지 오열의 모습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을 때에 가족들은 오열하고, 다시 저 천국에서 만날 때 진정 기쁨으로 오열하는 날을 맞이하게 되죠. 오늘 성경 말씀에서 제자들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나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과연 오늘 성경에 나온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 함께 살펴보길 원합니다. 1.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오셔서 (의심)하는 자를 만나주시는 분입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고 증언했지만, 그는 직접 자신이 예수님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봐야만 믿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과 손을 예수님의 못 자국과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도마를 책망하거나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일주일 후 특별히 도마를 위해 다시 찾아 오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은 의심 많은 이에게도 임하는 '찾아오시는 사랑'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의심을 이해하시고, 그 의심 속에서도 우리를 만나주시기 위해 다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말씀 가운데 찾아오십니다. 2. 예수님은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분이십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대면한 후 감격에 찬 고백을 터뜨립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8절) 그의 완고했던 마음, 의심으로 닫혀있던 심령이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 때문에 활짝 열린 것입니다. '오열하다.'란 말 뜻에는 슬픔의 오열이 아닌 다른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진리를 깨달은 데서 오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바로 도마에게 이러한 오열의 기쁨이 임하게 된 것이지요. 이처럼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들의 인생도 오열(悟悅)하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두려움, 상처, 의심의 문을 여시며 우리의 완고한 마음도 만져주셔서 기쁨과 감격과 감사로 넘쳐나게 하실 겁니다. 3. 예수님은 오늘도 말씀 가운데 오셔서 부활의 (믿음)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도마의 고백을 들으신 후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29절) 이 말씀은 이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믿는 자들과 앞으로 예수님을 믿게 될 자들을 위한 약속입니다. 오늘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직접 볼 수 없지만, 그분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오셔서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들도 도마처럼 우리도 의심과 고뇌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마음을 열어주시고, 믿음의 기쁨으로 오열하는 삶으로 인도하실 겁니다. 이것이 진정 '기뻐서 오열하는 인생'의 비밀입니다.
by 방송실
202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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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마지막 선택,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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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마지막 선택 , 겸손 (마 21:1~11) 우리는 살면서 자신을 내세우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순간들을 자주 경험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위대함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가장 존경받는 사람들은 종종 가장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사람들,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온 예수님은 바로 그런 겸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인 예루살렘 입성에서, 예수님은 권력과 위엄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겸손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겸손한 모습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길 원합니다. 1. 예수님은 (겸손)한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5절) 당시 로마 장군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화려한 전차를 타고 입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겸손의 상징인 나귀를 선택하셨습니다. 이는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예수님은 왕 중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마지막 공생애 순간에도 겸손을 선택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보여주셨습니다. 2. 예수님은 겸손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입성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셨습니다. 결국 그 겸손의 모습은 십자가로 이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친히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의 죽으심은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이 되었습니다. (빌 2:8-9) 이처럼 그분의 마지막 선택인 겸손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위대함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3. 예수님은 겸손한 (우리)를 타고 영광의 자리로 나아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용하신 나귀는 우리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나귀는 화려하거나 위엄 있는 동물이 아니라 평범하고 때로는 고집스럽기까지 한 동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나귀를 선택하셔서 자신의 거룩한 사명을 완수하는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예수님은 우리를 타고 영광의 자리로 나아가십니다. 우리는 단지 겸손한 나귀에 불과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실 겁니다. 나눔과 질문 1. 여러분은 삶 속에서 겸손을 선택하기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때 어떤 생각과 마음이 들었고, 그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지 생각해 봅시다. 2. 이번 한 주 동안, 내가 겸손을 선택해야 하는 구체적인 상황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겸손을 기억하며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순종의 걸음을 그려봅시다.
by 방송실
202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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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에서 피어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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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에서 피어난 믿음 (누가복음 19장 1-10절) 오늘 본문에 나온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으며 큰 부를 소유한 사람이었지만 돈을 버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사람들과의 관계를 스스로 단절하고 살아갔습니다. 그의 욕심과 성공에 대한 집착은 결국 외로움을 초래하였고,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도 그는 혼자였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셨을 때에 예수님을 가까이서 볼 수 없었던 이유는 그의 신체적 한계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가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면, 그들은 그를 도와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배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었고, 결국 스스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이는 그가 사회적으로도 단절된 삶을 살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고립시키지 않았습니다. 1. 예수님은 고립된 자를 무리 가운데로 (초대)하셨습니다. (5절)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 했지만, 군중과 자신의 한계로 인해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이는 군중에서의 고립만이 아닌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 없는 고립의 상황을 또한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있던 것을 보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홀로 떨어져 있던 그가 무리 가운데로 초대된 것입니다. 그 가운데 서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2. 예수님은 고립된 자의 (집)에 방문하셨습니다. (6-7절) 고립된 삭개오에게 있어서 상처는 아무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오늘 유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놀란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던 자신의 집에 예수님이 오신다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처럼 예수님은 고립된 자의 집에 방문하셔서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들과 교제하시는 분이십니다. 3. 예수님은 고립된 자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셨습니다 (8-9절)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한 삭개오는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부당하게 취한 것은 네 배로 갚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진정한 회개였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모든 것에 대한 참된 회개이지요.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그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과의 참된 만남은 언제나 삶의 변화를 가져오며,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합니다. 나눔과 질문 1.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사람들과 단절되고 고립감을 느끼나요? 삭개오처럼 스스로 만든 고립의 벽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예수님은 삭개오를 찾아가 그의 고립을 깨뜨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내 삶에서 고립된 부분을 변화시키신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by 방송실
202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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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가운데 있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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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가운데 있는 인생 (사 43:1-3) 인생을 살다 보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많은 이들이 불과 같은 시련의 한복판에 서 있을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직장에서의 어려움, 누군가는 가정의 위기, 또 다른 이들은 건강의 불안과 재정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순간 속에서도 우리들은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고자 수많은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너무 힘겨워 지쳐 쓰러질 때가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 포로 생활 가운데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의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 있었고 마치 뜨거운 불 가운데 놓여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불 가운데 있는 인생들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2b) 이 말씀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건네시는 위로와 보호 그리고 회복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위로와 회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1절)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절b)는 말씀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알려줍니다. 우리들 모두는 우연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우리의 이름을 알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상황을 세밀하게 알고 계신 분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시련 가운데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2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2a)는 말씀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신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줍니다. 물은 성경에서 극심한 시련을 상징합니다. 때로는 우리 인생이 압도적인 파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파도 한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구원) 하시는 분입니다. (3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3a)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 오직 하나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불과 같은 시련 가운데서 그 불꽃이 당신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못할 수 있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육신은 비록 고난 받고 해를 당할지 몰라도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지키시고 구원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나눔과 적용 1.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 있는 나를 보호하신 경험이 있었다면 서로 나누어봅시다. 2. 현재 나(혹은 누군가)의 삶에서 불과 같은 시련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 함께 나누고 기도합시다.
by 방송실
202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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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이끄는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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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이끄는 원동력 (창 12:1-3) 우리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어떤 선택은 단순히 오늘 하루를 좌우하지만, 어떤 선택은 우리의 일생을 결정짓는 중대한 기로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브람 역시 인생의 중대한 선택의 순간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안정된 삶의 터전인 고향과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알 수 없는 미지의 땅으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과연 아브람은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그는 7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든 것을 뒤로하고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났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진정한 원동력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하며, 하나님 말씀이 우리 삶을 어떻게 이끌어 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안주)하는 삶에서 불러내어 (비전)의 길을 가게 하십니다. (1절) 자신이 오랜 기간 동안 살았던 고향을 떠나는 것이 아브람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향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그의 정체성과 소속감, 안전을 제공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이 이러한 안전지대를 떠나길 원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너무 편안함에 안주하면 하나님의 더 큰 계획과 뜻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운 안전한 울타리가 오히려 하나님이 예비하신 더 높고 넓은 비전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들은 새로운 길, 비전의 길로 부르십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이 (복)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2절) 본문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아브람이 복을 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복이 되는 존재로 변화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즉, 아브람이 단지 복의 수혜자가 아니라 복의 전달자가 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들 또한 이 정체성을 깨닫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바르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정체성의 근원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을 통해 완성됩니다. (4절) 4절 말씀에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나오는데 이는 아브람의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믿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질문하거나 조건을 달지 않았습니다. 단지 말씀대로 행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순종의 발걸음이 결국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이 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아브람의 순종은 수동적이거나 맹목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긴 능동적인 신앙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그 말씀은 우리 삶의 진정한 원동력이 됩니다. 나눔과 적용 1. 내가 떠나야 할 '안주하는 자리'는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큰 비전을 향해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까요? 2. 내 주변에서 하나님의 복을 나누고 흘려보낼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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