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by 방송실
202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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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에 인생을 투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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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에 인생을 투자하고 있는가? (마 6:19–21)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믿음을 가지라’고 명령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어디에 보물을 쌓고 있는지를 먼저 물으십니다. 이는 신앙의 문제를 감정이나 말의 고백 차원이 아니라, 삶 전체의 가치 판단과 방향성의 문제로 다루십니다. 펀드매니저가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고 위험을 관리하며 장기적인 수익을 바라보듯,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이 어떤 가치에 투자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을 기준으로 삶을 운용하도록 부름받은 영적 펀드매니저임을 이 본문은 분명히 보여 줍니다. 1. 땅의 보물은 반드시 (손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에 보물을 쌓아 두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그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십니다. 땅의 보물은 좀이 먹고, 동록이 슬며들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갑니다. 이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산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유 그 자체를 문제 삼으신 것이 아니라, 사라질 것에 인생을 걸어 두는 삶의 방향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땅의 보물은 언젠가 반드시 손실이 확정되는 투자이며, 그곳에 마음을 두는 순간 삶은 염려와 불안에 묶이게 됩니다. 2. 하늘의 보물은 영원한 (배당)을 보장합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늘의 보물은 좀도 먹지 못하고, 동록도 침범하지 못하며, 도둑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는 단지 장차 받을 상급만을 의미하는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우선하며 살아가는 삶의 선택을 가리킵니다. 순종과 섬김, 사랑과 신실함, 그리고 복음을 위한 헌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하늘의 자산입니다. 하늘에 쌓는 보물은 세상의 변화와 환경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가장 안전한 투자임을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3.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이 (하늘)을 향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는 말씀으로 본문의 결론을 선포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마음이 먼저 움직이고 행동이 따른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반대를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은 의지나 결심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투자된 방향을 따라 이동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 염려와 기쁨이 머무는 곳이 곧 우리의 보물입니다. 마음을 바꾸려고 애쓰기보다, 투자 방향을 바꾸는 것이 먼저입니다. 보물을 하늘로 옮길 때, 마음 또한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진정한 영적 투자처는 어디입니까? 나눔 및 적용 1.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보물’은 무엇인가요? 2. 이번 주 한 가지라도 땅의 보물이 아닌 하늘의 보물에 의도적으로 투자하기 위해 내가 바꿀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인가요?
by 방송실
202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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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람에서, 기적의 공동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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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람에서, 기적의 공동체로 (히 11:39-40) 우리는 지난 한 주 동안 성경 속에 나온 기적의 사람들에 대해 차례대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께 쓰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이었고, 삶의 자리에서 분명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관점에서 보면, 이 위대한 인물들은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지만 약속의 완성은 보지 못한, 다시 말해 ‘미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다”고 증언합니다. 이는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한 세대 안에서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 기적의 사람들 모두가 미완의 존재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과 이삭의 인내, 야곱의 씨름과 요셉의 기다림, 모세의 헌신과 여호수아의 담대함은 모두 위대한 믿음의 장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각각 완결된 결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어 가실 이야기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를 통해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기적의 사람들은 믿음을 완성한 사람들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향해 믿음을 전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개인의 일대기 안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대를 따라 흐르며 완성되어 가는 역사입니다. 2. 하나님은 믿음의 역사를 우리와 함께 완성해 나가십니다. 40절에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의 역사를 미완으로 남겨두시고, 그 완성의 자리에 오늘의 성도들을 부르셨다는 뜻입니다. 즉, 오늘날의 성도는 믿음의 완성에 참여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혼자 잘 믿고 끝내는 개인적인 완주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향해 이어지는 동행의 발걸음입니다. 오늘 내가 서 있는 믿음의 자리는 나 혼자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반드시 누군가에게 이어져야 할 자리입니다. 3. 믿음의 완성을 위해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은 “이러므로”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는 11장에 등장하는 모든 믿음의 증인들을 전제한 선언입니다. 수많은 믿음의 증인들이 있지만, 우리의 시선이 머물러야 할 분은 그들보다 더 위에 계신 분, 곧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얽매이기 쉬운 죄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이미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인내로 달려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시작한 여정은 마침내 예수를 바라보는 자리에서 완성됩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내 신앙을 개인의 완주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믿음의 계승으로 살고 있나요? 2. 믿음의 완성을 위해 지금 내가 내려놓고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by 방송실
202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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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시작된 기적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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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시작된 기적의 인생 (창세기 2:7, 15~17) 2026년 신년특별새벽기도회의 주제는 〈기적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한 주 동안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와 같은 믿음의 인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 기적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출발점이 되는 아담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아담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아닌 가장 평범하고 연약한 인간의 대표입니다. 그는 왕족도 아니었고, 특별한 배경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는 “흙”으로 지음 받은 존재였습니다. “흙에서 시작한 아담은 과연 어떻게 기적의 인생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 답을 함께 찾아가봅시다. 1. 아담은 흙에서 시작했지만, 하나님의 (호흡)으로 살아난 존재였습니다. 아담의 출발은 분명히 초라했습니다. 그는 금이나 보석이 아니라 “땅의 흙”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흙은 연약함과 한계를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 아담의 인생은 태생부터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아담은 생령이 되었습니다. 아담의 인생이 달라진 지점은 재료가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이었습니다. 흙이라는 조건 위에 하나님의 숨결이 더해졌을 때, 전혀 다른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인생의 가치는 출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기가 그 인생 가운데 불어넣어졌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흙수저와 같은 인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호흡이 임하면, 그 인생은 기적의 무대가 될 수 있습니다. 2. 아담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담이 기적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와 교제하셨으며, 그에게 사명과 말씀을 주셨습니다. 에덴은 단순히 환경이 좋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자리였습니다. 특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한 명령은 억압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울타리였습니다. 아담은 아무 기준 없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앞에서 선택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였습니다. 이처럼 기적의 사람들은 환경이 좋아서 기적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큐티합시다! 3. 아담은 실패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아담의 인생에는 분명한 실패가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고, 그 결과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수고와 땀, 고통과 죽음이 그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보면 그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이야기의 끝을 다르게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보호가 아니라, 희생을 통해 덮어주시는 은혜의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죄로 끝내지 않으시고, 은혜로 다시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복음의 진리가 드러납니다. 아담의 기적은 타락 이전이 아니라, 타락 이후에 시작되었습니다. 기적의 인생이란 실수하지 않는 인생이 아니라, 실패 이후에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는 인생입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 자신을 ‘흙’처럼 여기며 열등감이나 체념 속에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서로 나누어봅시다. 2. 이번 신년특별새벽기도회 기간 동안, 하나님의 호흡과 말씀을 내 삶에 다시 들이기 위해 내가 회복해야 할 한 가지 실천은 무엇입니까?
by 방송실
202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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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같이하여, 다시 세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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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같이하여, 다시 시작하다 (사도행전 1:6~14) 오늘 본문은 교회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하기보다, 믿음이 어떻게 정렬될 때 교회가 다시 세워지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신년 첫 주일, 우리는 사도행전 1장 6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함께 세워지는 믿음의 자리에 서고자 합니다. 1. 제자들은 때를 묻는 신앙에서, (사명)을 붙드는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6-8절).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6절). 그들의 관심은 여전히 언제, 지금이 그때인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증인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 내 증인이 되리라”(8절). 예수님은 제자들의 초점을 때와 시기에서 사명으로, 미래의 결과에서 현재의 순종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믿음은 미래의 결과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늘 주어진 사명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과를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앞당겨 계산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묵묵히 붙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2. 제자들은 하늘을 바라보는 신앙에서, (삶)의 자리로 돌아가는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9-12절). 예수님께서 승천하시자 제자들은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그때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말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이 말씀은 감동의 자리에 머물라는 뜻이 아니라, 믿음을 안고 다시 삶의 자리로 나아가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교회가 세워지지 않습니다. 감격의 순간에 머무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믿음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에만 있지 않고, 순종하며 돌아오는 발걸음에 있습니다. 3. 흩어졌던 제자들이 한 마음으로 모여 (기도)할 때 (교회)가 되었습니다(13-14절). 제자들이 도착한 곳은 다락방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완벽한 사람들만 모여 있지 않았습니다. 실패했던 제자들, 의심했던 사람들, 도망쳤던 사람들, 그리고 이전에는 믿지 않았던 예수님의 아우들까지 그 자리에 모였습니다. 제자들은 그 자리에 함께 하던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14절). 교회의 시작은 한 마음으로 모여 기도함에 있었습니다. 120명이나 되는 성도가 함께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할 때 흩어졌던 교회는 다시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개인의 열심 위에 임하기보다, 하나 됨을 향해 자신을 낮추는 공동체 위에 임합니다. 마음을 같이할 때, 교회는 다시 세워집니다. 나눔 및 적용 1. 결과보다 오늘 내가 붙들어야 할 사명은 무엇입니까? 2. 교회를 세우기 위해 내가 참여해야 할 기도의 자리는 무엇입니까?
by 방송실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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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의 은혜, 다시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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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의 은혜, 다시 시작되다 (레위기 25:8~12) 마라톤에서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는 너무 힘들어서 잠시 털썩 주저앉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지 않습니다. 숨을 고른 뒤, 다시 일어나 다음 경기를 준비합니다. 기차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착역은 여행의 끝이 아니라 다음 여정을 준비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한 교회의 50주년도 그렇습니다. 끝났다는 표시가 아니라 다시 출발선에 섰다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희년을 “마지막 해”가 아니라 “자유를 선포하는 해”로 부르십니다. 오늘 본문 레위기 25장은 50년의 은혜 앞에서 우리를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 희년은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입니다. 희년은 사람이 만든 기념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시간을 세시고, 날짜를 정하시고, 때가 차면 선언하신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이제 쉼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한 이 50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계획이 치밀해서, 사람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간을 붙들고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자랑할 수 없습니다. 다만 고백할 뿐입니다.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이는 여호와이십니다.” 2. 희년은 (자유)를 다시 선포하는 때입니다. 본문 10절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 자유를 공포하라.” 희년의 핵심은 자유입니다. 빚에서의 자유, 억눌림에서의 자유, 그리고 왜곡된 관계와 상처에서의 자유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자유는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선포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자유를 쌓아두는 곳이 아닙니다. 자유를 흘려보내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만 회복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땅과 이웃을 향해 “자유가 있다”고 외치는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4장에서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희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3. 희년은 다시 (시작)하도록 허락된 은혜입니다. 11절과 12절을 보면 하나님은 멈추게 하십니다. 심지도 말고, 거두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벌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몰아붙이지 않으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숨을 고를 시간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희년은 끝났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숨을 고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부르심입니다. 교회의 50주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만하면 됐다”가 아니라 “이제 다시 바르게 나아가자”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더 크게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더 깊이, 더 정직하게, 더 복음답게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것이 희년을 맞은 교회가 선택해야 할 길입니다. 나눔 및 적용 1. 지난 날을 돌아볼 때,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붙드셔서 여기까지 왔다고 고백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2. 하나님 앞에 내가 내려놓아야 할 과거의 방식은 무엇이며, 다시 붙들어야 할 복음적 시작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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